열린공감TV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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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쥴리"가 쥴리인 이유, 그리고 이재명 모자를 만난 기억...

오늘의 제보자 안해욱 선생님께서는 태권도계에서 평생 헌신해오신 분입니다. (이하 "안 선생님")

1940년생으로서 1960년에 무덕관에 입관하여, 

아래 프로필에서 보시다시피 

수많은 경력과 업적을 쌓으신 분입니다. 원래 이 분을 취재한 것은 쥴리를 추적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이재명 후보에 대해 계속 악의적인 모함과 가짜뉴스가 범람하여 이를 막기 위해,

1970년대에 성남에 사셨던 분들을 찾아 사실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확보한 것입니다.

오늘 보도는 어찌 보면 선생님께서 평생 쌓아오신 관계와 명예에 

자칫 해가 될 수도 있는 제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 선생님께서는 옳은 일을 하신다는 신념으로,

적극적으로 당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대로 내보내달라 하셨습니다.

여야를 떠나, 정의와 올바름을 세우기 위해 중요한 경험을 알려주신 선생님꼐 감사드립니다.


<1> 쥴리가 쥴리인 이유. 선명한 기억

1. 제보 과정. "라나"에 가게 된 계기

- 선생님께서는 열린공감TV보도를 보다가, 사진으로 보여드린 김건희의 얼굴 변천사(?) 속에서

기억 속의 얼굴을 발견하여 제보하셨다고 합니다.

국기원에서는 5월 초에 "어린이태권도왕"을 뽑는 대회를 진행하곤 했는데,

1997년 5월 7일경 대회를 마치고 그 지역 식당 "하로동선"에서 1차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이곳 사징이 김원웅 광복회 회장...)근처 작은 다방에서 짐시 시간 보내다가 일행 4명과 함께 이후 라마다르네상스로 가셨습니다.

(체크) 라마다의 볼케이노가 "20대 젊은이들만 가던 곳"이고 룸은 없었다는 조선일보 등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보시다시피 여기는 50대도 가던 곳입니다.

한편 선생님은 이 곳을 "라나"라고 부르셨습니다. = "라마다르네상스"를 줄여서

2. 조 회장을 만난 계기

  1) "라나"에서 놀고 있는데, 웨이터가 와서 "저희 회장님이 뵙자고 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만날 이유도 없어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다음에는 마담으로 보이는 중년여성이 와서 다시 초대했죠. 

일행과 다 같이 갔습니다.

  2)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5~6층쯤이었을 겁니다..

 내려서 복도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조회장의 사무실이 있고, 그 앞 비서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 조회장이 먼저 온 손님들과 이야기 마치고나서 들어가 인사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죠.

(체크) 라마다 6층은 르네상스 직원들이 "아방궁"이라 부르던 장소죠.

필요한 여성이 있으면 지하 클럽 웨이터들에게 지시해서 여자들을 호출했다고 합니다.

조회장과 함께 놀던 지인들이 "손버릇"이 안 좋아서 당시 여자들은 싫어했다는 제보도 있습니다.

3.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은 왜 안해욱 선생님을 불렀을까?

  1) 이 분이 당시 태권도대회 해설위원지자 워낙 고수이다보니(당시 8단),

조 회장으로서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조 회장은 "오늘 잘 놀다 가시고 나중에 언제라도 와서 즐기시라"고 했습니다.

(체크) 실제로 조남욱 회장은 부여 출신으로서 태권도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본인이 운영하던 학교법인 백제학원의 백제중학교(부여)태권도계 인사를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 한편 당시 "라나"의 손님들 중 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웨이터들이 직업을 물어보고, 

괜찮아보이면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라는 제보도 있습니다.

다른 분은 혼자 맥주 마시고 있는데 "쥴리가 내 앞에 앉아서 인사하고 술을 먹었다"고 증언하시도 했지요...

4. 이후의 접대 과정 - 쥴리를 만나다.

  1) 집무실을 와 보니 상당히 큰 홀이 있었는데, 오래전 기억이긴 하지만 백 평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 테이블 6개 정도가 펼쳐져 있었고, ㄱ자 형태의 바와 무대도 있는 곳이었죠.

(체크) 다른 제보에서는 "집기를 싹 다 들어내고, 술상과 방석을 깔고 검사들을 불러 질펀하게 연말파티를 했다"고도 했죠.  2) 조 회장이 파트너 불렀다며 직접 쥴리(김교수)를 소개했습니다.

젊은 여성 둘이 들어왔는데, 조 회장이 "김 교수 어서와"라면서 맞이하고 테이블에 동석했지요.

광대도 튀어나오고 남자처럼 생긴 얼굴이었는데, 

통성명하고 나니 "달리 부르는 예쁜 이름이 있다"면서 

"쥴리"라는 예명을 말했습니다.

  3) 일행이 4명인데 여성은 둘만 왔으므로, 일행 중 좀 젊은 두 사람은 다른 바에 가서 놀았구요.


(체크) 1997년이면 김건희는 숙명여대 대학원에 다니던 시기였으므로 교수는 아니지만, 

신분세탁을 위해 그 때부터 그렇게 자칭하며 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교도 온 가족을 속이며 다닌 사람이니...

5. 쥴리가 무슨 뜻인데? 드디어 밝혀졌다.  1) 같이 온 친구가 말하길 

"원래 쥬얼리(jewelry)였는데, 빨리 부르다보니 쥴리가 되었다"

그 쥬얼리라는 이름도 본인이 만든 게 아니라, 

"보석같이 살라"며 누군가 지어준 것이라고.

(체크) 같이 온 여성이 쥴리의 어원을 그렇게 설명해줄 정도였다면, 그 둘은 이미 친한 사이였다는 뜻이죠.

지난 번의 제보자(https://www.youtube.com/watch?v=3mrCZH7A6Ao)도 그렇고, 

언제나 전화로 부르면 금방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죠. 근처 어딘가에서 대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교수치고는 나이가 너무 어려보여서 계속 물어보니 쥴리가 다니던 학교를 말했는데,

하필 그 학교가 제보자의 제자가 교수로 있던 곳이어서 그 자리에서 전화로 바로 확인했습니다.

제자는 "교수도 워낙 많고 해서 잘 모른다"고 답했는데, 워낙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다른 곳에도 전화해서까지 물어보셨다네요. 다들 모른다고 했고...

(체크) 김건희가 한림성심대 강사를 하던 것이 2001년이므로 위 제보는 그 이전의 일이죠.

  4) 그러다보니 쥴리도 어딘가랑 통화하더니 "바쁜 일이 있어서 가보겠다"고 하며 가버림.

(편집자 주 : 쥴리씨 당황하셨습니까? 많이 난처했겠네요...)

- 조회장으로서는 본인이 접대에 동원하는 여성이 좀 지적이고 스펙도 된다고 하고 싶어 교수라고 부르며 분위기 잡으려했던 모양인데... 망했어요;;;

쥴리는 이미 대학생 때부터 합격하지도 않은 단국대를 합격했다며 집안 전체를 다 속일 정도로 치밀한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죠. "리플리증후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6. 쥴리의 얼굴을 확인하다 - 확인사살!!

  1) 니나 해라.

남성적으로 생겨서 별로 흥미는 없었다고 하시네요. 

일행이 "그래도 저런 여자가 매력적인 게 있다"고 해서 

"니나 해라"라고 핀잔주셨다고.

("너부데데"에 이어 "남성적"...)(체크) 쥴리의 경기대 동기생들이 98년 졸업작품전에서 본 쥴리의 모습을 

"성형수술을 심하게 했었다"고 했는데, 

안선생님이 보신 것은 그 직전의 얼굴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쥴리가 가고 나서 저런 젊은 사람이 벌써 교수냐고 하니, 사실은 시간강사라고 했다네요.

7. 남달랐던 쥴리의 태도  1) 처음에는 매우 도도한 태도였는데,

안 선생님 역시 이병철 회장 앞에서도 기가 안 밀리던 분인지라... 

"교수" 거짓말을 추궁하여 여기저기 알아보자 금방 다소곳해졌다고 하네요(...임자 만났다;;;)

  2) 조 회장과 쥴리는 매우 친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 회장 측이 왜 두 명만 왔냐고 하자 쥴리가 대답을 했는데, 

당시 쥴리가 여대생(일반미) 그룹을 이끄는 일종의 팀장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체크) 지난 11월 30일 보도에서 제보자 분은 "멤버"라는 용어를 알려주신 바 있습니다. 

여성을 공급하던 지위라는 뜻인데, 또다른 제보자는 

"김명신이 대학생 시절 항상 어울려 다니던 멤버 4명이 있었다"고 했죠.

그 무리는 항상 화장을 진하게 하고 다녔으며, 

엠티를 가서도 아침일찍 화장을 두시간씩 했고

미대생이 학교 수업 마치면 항상 그 얼굴로 실습은 안하고 어디론가 나가는 팀이었다고.

쥴리가 "일반미의 멤버"였으리라 의심할 만한 대목입니다.

8. 예쁜 아가씨랑 잘 놀고 있었는데, 괜히 사람 불러서 "문디 같은 걸"...

  1) 안 선생님은 당연히 불쾌하셨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양주 두 병 정도 드시고,

나와서 당시 근처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저건 신기도 있고 완전 무당상인데 왜 이런데 와 있냐. 

저런 게 색이 세다"고 하셨다네요.. 

(체크) 실제로 다른 제보에서는 쥴리가 "내가 도사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데, 

웬만한 도사보다 내가 더 낫다, 내가 신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하죠.

9. 기억을 선명하게 하는 이유

  1) 일단 얼굴이 남성상, 무당상으로 독특했고

  2) 조 회장이 VIP룸에 일부러 불러다가 접대하겠다고 불렀으며

  3) 이름이 독특했고

  4) 자신의 제자와 겹치는 학교 교수/시간강사라 하니... 

기억이 날 수밖에 없죠.


<2> 1973년. 이재명 모자를 선명하게 기억하다.

1. 이재명 후보 모친을 본 기억

- 당시 상대원동 시장 쪽에 유료 공중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청소하고 이용료 받던 분을 주위에서는 "와리바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무례한 표현이어서 안 선생님은 그냥 "빼빼아줌마"라고 불렀다고... 바로 이재명 후보의 어머님이셨죠.

남정네들이 이용료도 잘 안 주고 거칠게 굴어서 그 분이 고생 많이 했다고 하십니다.

때때로 동네 양아치들이 그냥 이용하려 해서 안 선생님이 혼내주신 적도 있다고...

2. 매맞던 소년공 이재명이 태권도를 배우려 했으나..

  1)  1977년쯤 이재명의 모친이 어린 이재명을 데리고 태권도를 가르쳐달라며 왔었답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너무 많이 맞고 다녀서 운동이라도 시켜보려고...

-> 그러나 당시 관비가 한달 3천원. 지금으로 치면 한 30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이재명의 한달 봉급보다도 많은 금액이었으니...

깜짝 놀란 이재명의 모친은 어떻게든 내겠다고 할 정도로 절박했던 것 같습니다.

  2) 관비야 안 받고 가르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소년 이재명의 팔을 보니(이재명 후보는 1963년생입니다) 부상으로 굽어 있어서 안타깝지만 가르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배우고 싶어하냐고 하니 이재명은 공장에서 작업반장에게 하도 맞아서 그런다고 대답했다네요...

당시 상대원동 관장이 청와대 출신이어서 좀 힘이 있는 친구였는데, 

안 선생님이 화가 나서 가서 그 작업반장 패버리겠다고 하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말렸다고 합니다.

(체크) 하도 많이 맞아서 이 악 물고 공부했었다는 이재명 후보의 말과도 정확하게 일치하죠.

어머님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최근 군산시정에서의 "비천한 집안" 연설에서 언급된 바 있습니다.


안 선생님.

용기내서 제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떻게든 감추려는 쥴리의 정체와 본질. 

꼭 밝혀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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